'담은 순간들'에서는 제가 마음을 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울림을 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았거나 절판되어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양질의 책들을 읽고 그 안의 지혜를 탐색하는 시리즈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책으로 피터 베블린의 'Seeking Wisdom'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은 워렌 버핏의 오랜 사업 파트너이자 지혜로운 투자자로 존경받는 찰리 멍거가 극찬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는 번역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사고방식과 판단 오류,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지혜를 탐구하는 여정이 무척 흥미로워 챕터별로 나누어 소개하고 저의 생각과 함께 엮어보려 합니다.


책의 첫 장("우리의 해부학적 구조가 행동의 한계를 설정한다")을 펼치자마자 저의 오랜 화두와 맞닿는 내용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바로 '우리는 유전자에 얼마나 묶여 있는가', 그리고 '환경과 경험은 우리를 어떻게 빚어가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었죠.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존재입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조차 시간이 흐르며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나갑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다르게 만드는 걸까요? 유전자의 힘은 절대적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겪는 환경과 경험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책은 먼저 우리 행동의 근본적인 기반이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에 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의 몸, 특히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이 생각과 행동의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신경 연결에 달려있다"는 문장은 당연해 보이지만 곱씹게 됩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신경 연결 패턴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유전자만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유전자와 인생 경험, 상황적·환경적 조건, 그리고 어느 정도의 무작위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마치 씨앗(유전자)이 땅(환경)을 만나고 햇빛과 물(경험)을 통해 싹을 틔우듯, "유전자는 뇌 화학을 통제하지만 환경에 의해 켜지고 꺼집니다."

특히 저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부분은 '상호작용'과 '유연성'이었습니다. 유전자는 고립된 명령어가 아니라 다른 생물학적 요소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심지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켜지는지에 따라 다른 효과를 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뇌가 가진 유연성입니다.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니라, 경험의 결과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이전에 인스타그램에 남겼던 기록이 떠올랐습니다.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을 보며 "기억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면 어떤 기억들로 채워나갈 것인가" 고민했었죠. 그때 제게 큰 영감을 준 책이 바로 인생책 중 하나인 리사 펠드먼 배럿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이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는 무엇에 자신을 노출(exposure)시킬 것인지 선택할 수 있으며, 이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제가 인생 문장으로 삼고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아직도 생생합니다!

"물론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조금 수고를 들이면 앞으로 뇌가 예측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고 새로운 활동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오늘 배우는 모든 것은 내일을 다르게 예측하도록 뇌에 씨를 뿌려줄 것이다."

'경험이 뇌를 물리적으로 바꾼다'는 과학적 사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좋은 사람·좋은 경험·좋은 글·좋은 음악·좋은 공간 등에 스스로를 노출시킴으로써 뇌의 신경망을 바꾸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어집니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다른 인생 경험을 했기 때문에 동일한 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가 선택하는 경험과 노출이 우리 각자를 얼마나 고유한 존재로 만드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때로 우리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며 유전적 기질이나 성격을 운명처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어떤 경험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유전자를 가졌더라도, 사자 조련사처럼 경험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플라시보 효과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듯 우리의 생각이나 기대 역시 실제 현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유전자라는 초기 설정값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쌓아가느냐에 따라 무한히 다른 모습으로 조각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제가 '담은 순간들'에 마음을 준 기록들을 의식적으로 새겨나가는 행위가, 어쩌면 매 순간의 경험 속에서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재창조하려는 노력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책의 첫 장은 우리가 환경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얼마나 능동적으로 빚어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어떤 기억들로 채워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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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이런 사람'일까?: 경험으로 뇌를 바꾸는 법 ('Seeking Wisdom' 1부 1장)

찰리 멍거가 극찬한 도서 'Seeking Wisdom' 1부 1장을 읽고 던지는 질문. 우리는 유전자에 얼마나 묶여 있을까요? 환경과 경험, 그리고 '선택적 노출'을 통해 스스로를 빚어가는 가능성을 탐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