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구상해 온 작은 계획이 있습니다. 바로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지와 같이 국내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렵지만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양질의 해외 아티클들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이코노미스트지를 꾸준히 읽어오면서 (모든 기사의 논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과 사고방식은 제게 신선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다양한 주제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었구요.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해외 매체의 글들 중 함께 생각해볼 만한 주제나 관점을 담은 아티클들을 꾸준히 소개해 보려 합니다. 단순히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넘어 아티클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을 함께 엮어 나누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지평을 조금이나마 넓혀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얼마 전 이코노미스트를 읽다가 흥미로운 기사(What a refugee camp reveals about economics)를 접했습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 위치한 난민 캠프, 잘레카(Dzaleka)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일’이라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잘레카 캠프에 사는 사람들은 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UN에서 매달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지급하는 9달러 남짓한 지원금뿐입니다.

마치 현실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자연 실험처럼 느껴졌습니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일이라는 활동이 없어진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이곳은 인간이 주어진 환경의 제약 속에서 어떻게 삶의 균형을 잡고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가는지 그 생생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9달러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추구하고 또 가치 있게 여기게 될까요?

생존 너머의 삶: 일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찾는가

일할 기회가 없는 대신, 잘레카 사람들에게는 아주 많은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들은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갈까요? 놀랍게도 그들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행위를 넘어, 더 깊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넘치는 시간을 채우는 '여가'라는 거대한 산업: 일자리가 없는 대신 주어진 풍족한 시간 속에서 캠프의 중심가는 교회, 스포츠 바, 극장으로 가득 찹니다. 기사의 표현처럼 ‘여가'가 이곳의 가장 큰 산업(big business)인 셈입니다.
  •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대: 당장 일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교육을 받거나 기술을 배우고 서로 교류하는(네트워킹) 활동을 소일거리로 삼습니다. 기사에서는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막연하지만 간절한 기대감이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 스스로 만드는 질서와 공동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그들만의 방법을 찾는 모습 또한 놀라웠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들은 함께 순찰을 돌며 치안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며, 심지어 스포츠 도박 규칙까지 정한다고 합니다. 외부의 도움이 닿기 어려운 부분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공동체를 지키고 질서를 만들어가는 모습에서 어떤 환경에서든 소속되고 기여하며 안정을 찾으려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의미를 찾는 또 다른 길, '가족':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캠프 여성들이 평균적인 말라위 여성보다 아이를 더 많이 낳는 경향입니다. 기사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분석합니다. 경제적으로 무언가를 이루거나 성취할 기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부모가 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을 조금이나마 더 낫게 만드는 소중하고 드문 기회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죠. (기사는 비슷한 이야기를 미국의 빈곤층에게서도 들었다 덧붙입니다.)

마무리하며: 잘레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잘레카 캠프가 보여준 '일' 없는 사회의 풍경은 낯설지만, 어쩌면 그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인간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업이라는 과제가 사라진 그곳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넘어 관계를 맺고, 배우고, 스스로 질서를 만들며 삶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잘레가 캠프를 통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생존 이상의 것을 갈망하는 우리 안의 모습과 마주하는 시간, 잘레카의 이야기는 바로 그 성찰의 기회를 우리에게 건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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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삶을 의미있게 하는가: 일이 없는 곳에서 찾은 답들

일이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통해 법적으로 일할 수 없는 말라위 잘레카 난민 캠프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생존 너머 사람들이 어떻게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들만의 질서를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