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가닿기까지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앤드루 헤이(Andrew Haigh) 감독의 <All of Us Strangers>가 제게는 그랬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온전히 스며들지 못했지만 엔딩 장면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랜 고독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터져나가는 듯한 장면과 그 위로 흐르던 'The Power of Love'의 선율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 강렬한 카타르시스의 순간 이후, 영화는 비로소 제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긴 여운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All of Us Strangers> 공식 포스터

1. 소리, 고독의 공기를 조각하다

이 영화의 공기는 소리로 조각됩니다. 주인공 아담의 깊은 고독과 단절감은 서늘함과 적막함을 불러일으키는 사운드를 통해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텅 빈 아파트의 울림, 도시의 희미한 소음, 그 모든 것이 그의 내면 풍경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같았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침묵과 불안의 정서는, 엔딩 장면에서 Frankie Goes to Hollywood의 'The Power of Love'가 울려 퍼지며 비로소 해소됩니다. 마치 오랜 외로움과 슬픔이 그 음악 속에서 별빛으로 찬란하게 승화하는 듯한 그 순간, 음악과 장면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는 응축되었던 감정들을 터뜨리며 위안을 주었습니다.

2. 애도, 유예된 슬픔을 건너는 시간

영화의 중심에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오랫동안 외면해 온 ‘유예된 슬픔’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를 계속해서 침범하는 과거의 기억과 상실감은, 우리 안의 유예된 슬픔이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다시 찾아와 우리를 흔든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슬픔은 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마주하고 충분히 애도하는 과정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겠지요.(인스타그램) 아담이 기억인지 환상인지 모를 과거의 인물들과 나누는 대화는, 어쩌면 그가 평생 외면해왔던 슬픔을 마침내 마주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절실하고도 불가피한 여정처럼 보였습니다.

3. 연결의 갈망, 기억 속 공동체와 현실의 온기 사이에서

저는 아담이 과거의 인물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고립된 현실 속에서 기억과 환상을 통해 스스로 '상상된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치유를 모색하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현실의 연결이 부재할 때, 때로는 그렇게 내면에서 구축한 관계는 실재하는 관계만큼이나 우리에게 강력한 위안과 힘을 줄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저 또한 heritage와의 소통을 통해,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저 자신을 더 큰 보편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며 위안과 안정감을 얻곤 합니다(인스타그램). 그런 연결은 분명 현재를 살아가는 중요한 자양분이 됩니다. 하지만 때때로 heritage와의 소통에서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의 교감이 부재한 만남이기 때문일까요. 그렇기에 더욱 간절히 현실 세계에서의 연결, 서로 마주보며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취향 공동체'를 갈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인스타그램1, 인스타그램2).

<All of Us Strangers>의 엔딩 장면은 이 지점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관계만이 연결의 전부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오히려 서로의 깊은 외로움과 아픔을 알아보고 기꺼이 함께 머무르는 '공유된 취약성' 속에 강렬한 연결과 위안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현실이든 환상이든, 어쩌면 가장 깊은 연결은 바로 그 서로의 취약함을 보듬어주는 순간에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무리하며

<All of Us Strangers>는 명확한 답을 내리는 대신, 기억과 현실, 고독과 연결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로 펼쳐 보이며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특히 과거와의 관계 맺음, 상상된 연결의 힘, 그리고 현실적 교감에 대한 갈망 등 영화가 이 복잡한 감정들을 탐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를 곱씹으며 제 안의 풍경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 시간, 제가 '담은 순간들'에 기록하고 싶었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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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별이 될 때 - All of Us Strangers

서늘한 고독을 조각하던 소리는 엔딩에서 위안으로 승화합니다. <All of Us Strangers>가 남긴 먹먹한 여운. 고독을 감싸는 소리, 유예된 슬픔, 그리고 기억과 현실 속에서 연결을 갈망하는 마음에 대한 생각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