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은 순간들'의 첫 글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하다, 2023년 1월에 개인 SNS에 기록했던 글을 꺼내왔습니다. '마음 줄 곳'이라는, 이곳의 시작점이 된 고민과 다짐이 담겨 있어 첫 글로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여 전에 작성되었지만, 그 고민과 지향점은 지금의 '담은 순간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2023.1.14.)


실로, 마음 줄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사라짐을 근본으로 하는 것들에 마음을 주어 슬펐던 20대.
작년 연말, 이제는 무엇에 마음을 주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오늘 쾨닉 서울에서 전시를 보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쾨닉 서울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무상함을 구체적 형태로 표현"한
세 작가ㅡ온 카와라,피터 드레허, 알리시아 크바데ㅡ의 그룹전이 열리고 있는데, 나에게 소중한 화두를 다루고 있는 너무나 소중한 전시였다.

1.
피터 드레허는 1972년부터 작업실에서 동일한 물잔을 그리면서 수도자 같은 작업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과정에 마음을 주는 일.
제여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되ㅡㅁ'이랄까.
됨이 아닌 되ㅡㅁ, 그러니까 어떤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 자체(becoming and becoming)에 마음을 주는 일.

그럼 내가 원하는 상태는 무얼까?
올해 가장 소중히 결심한 다짐은
'집착하지 않는 삶'이었다.

지향점은 가지되, 집착하지 않는 사람.
추구하되, 바람대로 되지 않더라도 수용할 줄 아는 사람.
그러니까, 집착하지 않는 상태로 되어가고 있는 과정에 마음을 주는 사람.

(써놓고 보니 불교의 마음수양이구나.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결론이 불교철학으로 닿은게 신기하다.)

2.
또 하나 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피터 드레허에게 시간은 "인생의 우여곡절이 아니라, 완료되어야 할 일에 강한 제약을 가하는 회화적 실천의 형태 속에서 흘러가는" 것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제약이 낳는 의미,
제약으로 인해 흘러가는 삶.
제약이 없다면 의미도 없을 거야.


자정까지 완성되지 못한 작품은
모두 파기한
온 카와라의 작품 역시
제약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모든 욕망의 무한정한 충족은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그것은 또한 행복에 이르는 길도 아니다." - 에리히 프롬

"무한한 기회는 기회의 부족이나 부재만큼이나 강력한 좌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기회가 무한해 보일 때는 당연히 현재를 비난하게 된다." - 에릭 호퍼


제약을 행복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되어감의 과정에 마음을 주는 사람
으로 거듭나는 2023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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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줄 곳이 있다는 것

예술과 철학 속에서 '마음 줄 곳'을 찾아가는 성찰의 기록. 집착 없는 삶과 제약 속 의미에 대한 생각을 담았습니다.(2023.1.14.)